유럽 클래식 산책

객석 2004년 1월
[이달의 책] 선정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 내려갔던 그 많았던 문장들은 이제 다 잊혀졌지만 단 한 문장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 위대한 걸작 속에 숨겨진 뒷예기가 오직 미술과 건축에만 있으란 법은 없다. 당연히 음악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과연 '아는 만큼' 들릴 것인가?

'유럽 클래식 산책'은 그 부제가 보여 주듯 빈에서 프라하까지 음악의 도시를 찾아 다니며 작가가 꼼꼼히 적어 내려간 기록이다. 빈, 잘츠부르크, 밀라노, 나폴리, 파리,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바이로이트, 퓌센, 프라하, 유럽굴지의 음악 도시들이 이 책 한 권속에 빽빽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이동활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청소년을 위한 서양 음악사''음악인을 위한 독일어 딕션'등을 저술하고 라디오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의 해설 위원을 맡은 이력 때문인지 글은 간결하고 이해하기 좋다.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며 쓴 글답게 책의 상당 부분은 건축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음악의 예술적 가치를 확고하고도 수학적인 형식미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처럼 음악과 건축은 닮은 점이 많다. 그래서일까? 미색의 고운 종이에 선명히 새겨진 유럽의 건축물과 음악 거장들의 작품에 좀 더 친숙히 다가설 수 있게 만드는 소소한 이야기들은 적절한 궁합을 이룬다. 게다가 두껍고 어려운 음악사 책에서나 볼 만한 현대음악가들에 대한 부분까지 곁들여져 있으니 '유럽 클래식 산책'은 다양성에 있어 뒤쳐질게 없다.

그러나 3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책 속에 열 개의 도시와 그보다 더 많은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은 조금 버거운 일이 아니었나 싶다. '유럽 클래식 산책'은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 라이프치히의 어느 거리를 거니는 당신에게 바흐를 노래한, 헤세의 시 한 구절을 읊어 줄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그 시에 감동하며 거리의 작은 조각물 하나라도 다시 돌아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클래식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뒷받침되어야 할 듯싶다. 만약 페터 슈라이어의 노래를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사람이라면 그가 어린 시절 성 십자가 합창단의 단원이었다는 사실에 반가워할 수 있을 테니.

앞서의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답하자면 음악은 '아는 만큼' 들리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지역 언어 역사 등 만만치 않은 방해물을 음악은 훌쩍훌쩍 잘도 뛰어 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클래식 산책'은 확실히 아는 만큼 읽혀지는 책이다.

글 박용완 기자